주가 임하신다(말라기 4:1-6)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성경입니다. 말라기서는 BC 430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말라기는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의 메신저’, ‘보내진 자’, ‘사자’, ‘전령’, ‘심부름꾼’, ‘천사’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1장 1절의 ‘말라기’를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라기서를 기록한 익명의 선지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 이름을 감추고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메신저라고 뜻을 지닌 보통명사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라기 1장 1절에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선지서의 서두에 선지서를 기록한 실제 선지자의 이름을 기록하는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 역시 실제 이름으로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말라기서의 핵심 메시지는 “메시야가 오신다. 주가 임하신다”는 것이고.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가 먼저 온다”입니다. 실제로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이후 약 430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 세례 요한이 먼저 왔습니다. 세례 요한이 먼저 와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이 구약성경에 영원한 메시야 바로 그분이시다.” 이렇게 세례 요한이 먼저 와서 메시야의 길,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때까지가 율법과 선지자의 때이고 후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신약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말라기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말씀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핵심 메시지인 메시야가 오신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선포합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 이후 약 430년 동안은 조용합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온 세상이 가장 고요한 것처럼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이후 약 400년 동안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고요하고 조용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기라고 말합니다.
이제 구약의 역사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창조시대와 노아시대를 지나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고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았는데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근간을 이루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족장시대의 역사입니다. 야곱의 식솔들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요셉 덕분에 고센 땅에서 처음 30년은 편안하게 살았지만 이후 400년간은 노예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부르짖습니다. 거기까지가 애굽시대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BC 1446년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십니다. BC 1405년에 모세가 죽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요단강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여기까지가 출애굽시대, 광야시대의 역사입니다. BC 1390년 여호수아가 죽습니다. 그리고 사사시대가 시작됩니다. BC 1050년에는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웁니다.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 시대까지 이스라엘이 하나의 왕국이었던 시대라 해서 통일왕국시대라고 말합니다. BC 930년 솔로몬이 죽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둘로 갈라집니다. 이 시대를 분열왕국시대라고 합니다.
BC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제국에 먼저 망합니다. 그때부터 사마리아는 혼혈의 땅이 되고 경멸받는 동네가 됐습니다. BC 586년에 남쪽 유다가 바벨론제국에 망하면서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여기까지가 이스라엘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두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던 시대라 해서 분열왕국시대라고 부릅니다. 그 후 바벨론 포로시대를 지나서 포로귀환시대로 이어집니다.
BC 537년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1차로 귀환한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합니다. BC 457년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로 귀환한 사람들이 신앙부흥운동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BC 444년 느헤미야가 3차로 귀환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합니다. 바로 그때 그 시절에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라 할 수 있는 말라기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BC 444년부터 BC 430년경에 활동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외쳤습니다. “주가 임하신다. 메시야가 오신다.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가 먼저 온다.” 그렇게 선포했습니다. 이후로는 정말 잠잠해요.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잠잠한 기간이 계속됩니다.
그 시대를 신구약중간기라고 하는데,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세례 요한이 등장하기까지 신구약중간기에 세계의 역사가 급변합니다. 신구약중간기에 바사제국이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에 망합니다. 헬라제국은 로마제국에 망합니다. 로마제국이 등장해서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 바로 그때 메시야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드디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야 바로 그분인 예수님께서 오셨으니 그때부터 신약시대가 열립니다. 세상에 영원한 제국은 없습니다. 앗수르제국은 바벨론제국에 망했고 바벨론제국은 바사제국에 망했으며 바사제국은 헬라제국에 망했고 헬라제국은 로마제국에게 망했습니다.
그 로마제국도 지금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습니다. 영원한 나라는 하나님 나라뿐입니다. 영원한 나라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는 ‘주가 임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배은망덕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다주신다는 말씀이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라기서의 말씀입니다.
이제 말라기 1장 2절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유대 땅에 돌아와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너희들 참 많이 사랑했다. 내가 야곱의 후손인 너희들 내가 참 많이 사랑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했는데,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제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셨나이까?” 하고 말합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섭섭병’이 아주 단단히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많이 사랑한 거 너희도 알지?” 그러니까 그들이 대답해요. “언제요? 하나님은 언제 우리를 사랑했습니까? 고작 그것 가지고요? 그게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입니까?” 이런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힘들게 성전을 건축하고 세월이 흘러 예루살렘 성벽도 건축하고, 그렇게 우리는 할 만큼 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뭘 주셨습니까? 섭섭하다는 거예요. 우리가 그만큼 하나님을 섬겼으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뭔가를 좀 챙겨주셨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민족을 보십시오. 주변 열강에 비하면 우리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약하고 힘이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고달프고 힘든 삶을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고요? 언제요? 고작 그거 가지고, 그게 우리를 사랑한 겁니까? 이렇게 말라기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섭섭병이 든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됩니다. 섭섭한 감정이 가득 찬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되죠. 이 말라기서에 하나님과 유대인 사이에 6개의 큰 논쟁이 있는데, 대화가 안 돼요. 소통이 안 돼요. 왜냐하면 말라기 선지자 당시에 유대 땅에 돌아와서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 섭섭한 감정이 가득히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되는 모습을 말라기서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조금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의 쌀을 나누어 드렸어요. 사랑의 쌀을 나눠 드렸어요. 그러니까 쌀을 받으신 분 중 한 가정이 교회로 나오게 된 거예요. 교회는 새 가족이 왔으니까 얼마나 기뻐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자주 전화도 드리고 그랬는데 부부가 두 달을 교회로 나오고 나서 그다음부터는 교회로 안 오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돼서 교회에서 전화를 했더니, 그분들이 “아니, 교회에서 우리에게 쌀 두 자루 줬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두 달 교회를 나가줬는데 그거면 되지 뭘 더 바랍니까?” 그랬다는 거죠. 참 안타까운 일이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라는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두 달 나가줬는데 뭘 더 바랍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안타까운 것입니다.
마치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바벨론 땅에서 고생하다가 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 그들의 후손들 당시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섭섭병이 든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하나님 섬겼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좀 더 챙겨주셨어야지,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게 뭐가 있습니까? 우리가 그만큼 하나님 섬겼으면 됐지, 우리보고 뭘 얼마나 더 하라는 겁니까? 그런 마음인 거지요. 그 당시 유대 땅에 들어와서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만큼 믿음이 없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없으니까 그렇게 섭섭병이 든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섭섭병이라는 것이 없어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체가 감사한 거예요.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한 거지 거기에 뭐가 더 필요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어떻게 고난당하시고 어떻게 죽기까지 하셨는지 그것을 아는 성도는 섭섭병이라는 것이 없어요.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섭섭병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진실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 당시에 유대인들의 상태가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 7절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그 당시 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괜찮다. 아무 일 없다.” 그랬다는 거예요. 제사장이 이 정도이니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 상태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는 일을 바라보시면서 차라리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데 거룩하고 구별된 믿음이 없어요.
말라기 1장 8절을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제사를 드리는데 재물을 구분해서 미리 준비해서 제사 드리지 아니하고 눈먼 것, 병든 것, 어차피 쓸모없는 것, 그런 것들을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제물 삼아 제사를 드렸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는지, 누가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아주면 좋겠다. 차마 눈 뜨고 내가 볼 수가 없구나.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표현하실 정도였습니다.
말라기 2장 16절도 같이 읽읍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제사장들은 더러운 떡을 제단에 드리고, 눈먼 것들을 끌어다가 그렇게 제물 삼아 제사 드리고, 그렇게 영적으로 타락했어요. 그 당시 백성들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이방 여인과 결혼하고 싶어서 자기 아내를 학대해요. 자기 아내와 이혼합니다. 자기 아내를 버리고 학대하고 그렇게 가정을 버리는 못된 남자들이 그 당시에 한둘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매우 강한 어조로 경고하세요.
말라기 1장 1절을 보면 ‘경고의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4장 1절에도 구체적으로 경고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주가 임하시는데 그날이 오면 그날이 누군가에게는 용광로 불 같은 날이 된다고 말씀해요. 주님이 오시는데 그날이 누군가에게는 용광로 불 같은 날이 되고 누군가는 용광로 불에 던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지푸라기같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주가 임하시는 날 그날엔 교만한 자, 악을 행하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자, 거짓되고 가증한 자의 삶을 산 사람들은 용광로 불에 던져지는 지푸라기같이 된다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는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용광로 불에 던져지는 지푸라기 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도 없을 줄 믿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예수님의 초림을 기다리면서 이 말씀을 전했어요.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이 말씀을 듣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이고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우리는 뜨거운 용광로 불에 던져지는 지푸라기 같은 존재가 될 겁입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기억해서는 안 되고 공의의 하나님도 꼭 마음에 기억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7절 같이 읽겠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또 요한계시록 22장 12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신칭의 교리가 우리의 행위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우리의 행함은 철저히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라기 선지자가 선포했던 경고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고 우리의 소행을 돌아보고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용광로 불에 던져지는 지푸라기 같은 사람은 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살피고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데 말라기서 전체를 통해서 주시는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은 제단에 더러운 떡을 드리고, 눈먼 것 병든 것을 골라서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다며 제사 지내는 흉내만 내고 백성들은 이방 여인과 결혼하려고 자기 아내를 학대하고 버리고 이혼하고 그렇게 거짓되고 가증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릴 수 없어서 여전히 메시야가 오시는 길을 준비하고 계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을 계획하고 계획을 이루고 계셨다는 사실이 말라기서 전체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날에 심판받을 것이 두려워서 믿음 생활하는 성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원함으로써 정직하고 진실한 믿음을 지켜가는 올바른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 믿음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말라기 3장 7절을 우리 같이 읽읍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그들이 조금 깨달았어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까? 말씀을 듣고 보니 이제라도 우리가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우리가 살겠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이 말라기 3장 8절입니다. 우리 이 말씀 잘 배워야 합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갑자기 십일조 이야기가 나와요. 당황스럽죠? 저도 당황스러워요. 갑자기 하나님은 여기서 십일조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했더니, 하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이 십일조 말씀이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십일조를 바르게 이해해야겠습니다. 십일조는 신앙고백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앙망하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등 돌리지 않고 지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신앙의 고백이에요.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그 신앙의 고백이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걸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무거운 짐이 아니에요. 십일조는 성도에게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내가 수입이 있어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고맙고 감사한 거죠. 사실은 자체로 놀라운 기쁨입니다. 십일조는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십일조는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십일조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구별해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내 것을 드린다고 생각하니까 아깝게 느껴지는 거예요. 원래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아까운 게 아니고 기쁜 거예요. 십일조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구분 없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십일조는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질서입니다. 십일조는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내 삶의 가장 귀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하나님 백성의 삶에서 우선순위인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성도의 삶의 질서가 바르게 세워집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굽어 살피시고 성도에게 수입을 허락하사 소득이 있게 하시고, 성도는 이 소득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인 줄로 알고 기쁨으로 십일조를 드리며, 교회는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십일조 규례에 합당하게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곳에 사용하고 교회는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이 뜻하시는 대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사용하고, 소득 분배의 정의를 이루며, 교회 근처에 배고픈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만들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살펴보시고 너무 기뻐하셔서 교회 성도들에게 더 많은 수입을 허락해 주시고 성도는 이상하고 신비하게 십일조가 자꾸자꾸 많아지는 은혜를 경험하고, 그렇게 선순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 그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거예요.
여러분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신비하고 놀랍게 여러분에게 십일조가 많아지는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수입을 허락하시고 소득이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줄 알고 기쁘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십일조 교육을 잘 받았어요. 저는 설날과 추석을 그렇게 기다렸어요. 설날이나 추석이 돼야 용돈이 생기고, 그래야 십일조를 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살았더니, 오늘 제가 이렇게 목사가 됐어요. 여러분, 십일조는 아까운 게 아니에요. 정말 기쁜 거예요. 여러분 이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이 시대의 교회가 또 정신 차려야 할 게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면 교회는 십일조를 가지고 정말 거룩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일에 사용해야 돼요. 이웃 사랑 실천하는 일에, 주변의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 보살피는 일에, 십일조 규례를 제정해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교회는 또한 제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하나님 모시기에 진실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릴 때 주일학교 선생님을 잘 만났어요. 어릴 적에 주일학교 선생님께 가장 중요한 것을 다 배웠습니다. “얘들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이다. 첫 열매는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그걸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이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으로 살면 하나님도 사람을 첫 열매처럼 귀하게 여기신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으로 너희들 평생을 살아라. 하루의 첫 열매는 새벽기도다. 하루의 첫 시간, 새벽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새벽기도는 사실은 ‘새복기도’이다. 어릴 때 저는 그렇게 배웠어요. 세상 사람 만나기 전에 하나님 먼저 만나고, 세상 이야기 듣기 전에 하나님 말씀 먼저 듣고, 세상 사람과 의논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상담하고, 너희들은 하루의 첫 열매, 새벽 시간을 꼭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으로 살아라, 알겠지?”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한 번도 안 빠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때도 가급적 새벽기도 하고 학교로 갔어요. 저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그런 신앙을 나에게 가르쳐준 선생님이 있었다는 거 너무너무 감사해요. “얘들아, 하루의 첫 열매는 새벽기도다. 그다음 한 달의 첫 열매는 뭘까? 한 달의 첫 열매는 십일조다. 수입이 생기면 제일 먼저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것을 구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기억해라. 하나님은 얻어먹는 걸인이 아니시다. 십일조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인데 하나님의 밭에 심으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돌려주신다. 십일조 드리기를 아까워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아라, 알겠지? 그리고 살면서 드리는 첫 열매가 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감사해라. 너희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라.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인생의 첫 월급을 받으면 그거 하나님께 드려라, 알겠지?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인생을 지켜주신다. 세상 사는 거 쉽지 않지만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으로 살아 봐라 하나님이 너희들 귀하게 여기시고 너희들 인생 길을 책임지시고 도와주신다.” 주일학교 할머니 선생님이 그 말씀을 하시는데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요. 제가 잊을 수 없어요. 사실은 우리 민족이 복 받은 것이 저는 생각해요. 그런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지금 우리 다산은혜교회에도 그런 믿음의 선생님들이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정말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주일학교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내주시는지 웬만한 초등학교보다 우리 교회 아이들 숫자가 더 많아요. 너무 감사하죠. 지난주일 2부 예배 마지막에 유치부 아이들이 여기 나와서 찬양을 했거든요. 저는 지난 주간에 하루에 두 번씩 봤어요. 유치부 아이들 찬양하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기쁘고 감사한 거예요. 보람이 막 느껴지고 너무 뿌듯하고 볼수록 기쁘고 행복하고, 1부 예배 오시는 분들은 잘 모를 텐데, 우리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어요. 다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유년부 아이들이 나와서 찬양을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믿음을 가르칠까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 이 믿음 가르치면 우리 아이들의 앞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 여러분, 부모로서 믿음의 선배로서 우리 믿음의 길에 앞선 자로서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믿음의 본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행실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우리가 말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믿음의 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더 믿음이 훌륭한 세대가 되고, 바라기는 우리 다음 세대가 더 하나님께 은혜 받는 세대가 되고, 우리 다음 세대가 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세대가 되고, 우리 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더 하나님께 크게 복을 받고 하나님께 특별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세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우리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 우리나라가, 우리 민족이 지구촌의 모든 영성과 지구촌의 무너진 윤리와 도덕을 바로 잡아가는 그런 민족으로, 제사장 민족으로 쓰임 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우리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어떤 믿음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려야 할까요? 첫 열매 드리는 신앙을 가져야 돼요. 첫 열매 드리는 믿음으로 살면 우리가 한 하나님 앞에 은혜 받고 복을 받고, 이 땅의 교회들이 다시 살고, 우리나라와 민족도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신명기 6장 5절에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데, 같은 말씀이 다르게 표현돼 있어요. 우리 신명기 6장 5절 같이 읽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태복음 15장 8절도 같이 읽읍시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우리 어떻게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을 기다려야 할까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이웃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계명을 실천하면서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 믿음 지키고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꼭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